Make it precious! (소중하게 만들자!)

202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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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셔스 플라스틱 대전'의 메이커 조미림)

 

자신이 가진 물건을 쉽게 내치지 않고 귀히 여기는 사람이 있다.

고치고 또 고쳐 그 물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 근성과 세상에 탄생한 존재를 향한 오랜 존중은 그의 삶을 이루는 습관이다. 그가 최대한 오래 지닐 수 있는 자신만의 물건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메이커 일은, 만드는 행위를 통해 사회와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혁신가의 길을 열어주었다. ‘프레셔스 플라스틱 대전’의 메이커 조미림 씨 이야기다.

그가 대표로 있는 (주)재작소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으고, 분쇄하고, 다시 제작하는 과정을 통해 친환경적 가치를 지닌 제품을 만드는 ‘프레셔스 플라스틱’ 프로젝트를 지역에서 시도했다. 쉽게 소비하고 그보다 더욱더 손쉽게 버려지는 물건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며 우리는 어떤 고민과 실험을 할 수 있을까. 메이커 조미림 씨의 이야기는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긍정적 상상을 무엇이라도 꺼내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주)재작소 멤버 박재만 씨와 함께)

Q1.

‘재작소’를 운영하시며 메이커 기술을 활용하여 사회와 환경의 변화를 만들어나가는 실험과 시도를 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릴게요.

 

말씀하신 대로 사회에 이로운 방향에 초점을 맞춘 메이커 기반의 활동을 하고 있어요.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 의제를 발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잖아요. 그러한 과정에 힘을 보태는 차원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여러 마을 공동체와 함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참여해왔고, 그런 활동을 하다 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된 거죠. 지역에서 지금의 ‘프레셔스 플라스틱’ 프로젝트를 시도하기까지 쓰레기 이슈와 관련하여 이곳저곳의 마을 분들, 나아가 시민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거쳤던 거예요.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 분들을 위한 ‘입간판형 경사로’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프로젝트였어요. 평소에는 건물의 입간판이지만 장애인 분들이 다가서면 휠체어를 타고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 형태의 경사로가 되는 제품을 개발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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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대학교, 충남대학교 학생, 지역 상점들이 함께 참여한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입간판형 경사로 제작·배포 프로젝트)

 

요즘은 ‘의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취지의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에요. 무분별하게 소비된 의류가 어마어마하게 버려지는 현실이에요. 이런 문제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최대한 수선해서 오래 입는 의류 문화를 확장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에요.

사실 꽤 오래전부터 관련 워크숍을 진행해 왔어요. 메이커로서 새롭게 제품을 만드는 일 이외에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사람들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수선 기술을 공유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사실 이런 고민은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에 있어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부여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그저 ‘만드는 행위’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버려지지 않고 최대한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 바탕을 두고 창작 활동을 하는 중이에요. 어떤 물건이 탄생하기 전부터 엄청난 고민을 하는 거죠. 사람의 삶에 최적화된, 그래서 사람과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는 물건을 제작하기 위한 작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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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셔스 플라스틱 대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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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언급하신 것처럼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프레셔스 플라스틱’을 지역에서 시도하셨어요. 버려지는 쓰레기를 다시 활용하여 ‘자원 순환’의 가치를 실험하고 지역 생활 문화로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여겨집니다. 쉽지만은 않았을 시도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요.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쓰레기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렇게 하는 일에 의해 문제를 인식한 뒤 글로벌 프로젝트인 ‘프레셔스 플라스틱’에 관심 두게 되었던 거죠. 전 세계적으로 꽤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프로젝트에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메이커로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판단하고부터 지역에서 시도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거예요. 단기간에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재작소 내부에서의 오랜 고민과 지역 차원의 공론화 과정이 있었거든요.

사실 ‘오픈 소스 프로젝트’이다 보니 프로젝트를 위한 기술적인 문제는 좀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지역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한 공감을 얻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버려진 플라스틱을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상상이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로만 치부되다 보니, 그것이 지역에서도 꼭 필요한 가치 있는 일임을 인식하고 공론화하는 것도 오래 걸렸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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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삽니다’를 통해 모인 폐플라스틱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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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최근, 생활 속 폐플라스틱을 지역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코인으로 교환해주는 ‘플라스틱 삽니다’ 프로젝트가 끝났어요. 프로젝트를 통해서 모인 작은 플라스틱들이 새로운 순환을 맞이하기 위해 한 곳에 가득 모여 있는 모습도 보고 왔어요. 그것들이 ‘프레셔스 플라스틱’ 기술을 통해 어떻게 다시 활용될 수 있을지 궁금해요.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모인 플라스틱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기에 앞서 선행되어 할 일이 있다고 판단하는데요. 좀 더 많은 대전 시민을 대상으로 ‘프레셔스 플라스틱’ 프로젝트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는 것과 동시에,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어떤 종류의 물건 제작이 가능한지에 관한 공유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다양한 시민의 구체적인 의견도 들어보고 싶은 거죠. 그 이후에 본격적인 제품 개발을 할 예정이에요. 오랫동안 사용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물건에 의미를 담아 제작하려고 해요.

이를테면 생태적 가치를 상징화한 액세서리 제품을 사례로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년에 ‘프레셔스 플라스틱 대전’의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펀딩을 시도했었는데요. 그 펀딩 과정에서 제공한 리워드 중 ‘고래 열쇠고리’가 있었거든요. ‘고래’가 생태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에 관한 의미를 담은 열쇠고리였어요. 환경 문제를 자연스레 인식할 수 있는 고래 이야기를 물건에 담아 보급했던 거죠. 만약 ‘폐플라스틱’을 액세서리 용도로 재활용하게 된다면 그런 식으로 제품 개발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이외에 기존의 플라스틱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생활용품 종류도 고민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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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플라스틱의 변신)

 

플라스틱을 아예 안 쓸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꼭 필요한 플라스틱 생활용품을 재생 원료로 만드는 거죠사실 저는 플라스틱 재료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여기진 않아요. 일회용으로 빨리 소비되고 금방 버려지는 플라스틱 사용 문화가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프레셔스 플라스틱’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되었어요.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이 유용한 원재료인 건 사실이거든요. 값싸게 쓸 수 있는, 변형해 가면서 재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많지 않아요.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이 이 점에 관해 어떻게 판단할지는 모르겠지만 메이커로서 재료를 다루며 드는 생각이에요. 이렇게 유용한 원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잘 쓸 수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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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 ‘조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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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사회와 환경의 건강한 혁신을 위해 해온 그간의 활동이 미림 님 개인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도 궁금해지네요.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죠. 저는 소비를 절제하는 생활이 습관화된 사람이에요. 새 물건에 대한 욕심도 없고, 어떤 물건 하나를 사면 오래 지니고 싶어 하는 성향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만드는 활동을 하게 된 것도 워낙 만들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내 것을 만들어서 오래 갖고 싶어 하는 성향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게 단순히 내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고 오래 쓰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작한 메이커 일이 지금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까지 확장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시야가 확대되고 나서 환경에 관한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공부하면 할수록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복잡하게 엉켜있는 실타래를 푸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작은 것부터라도 시도하는 일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도요. 소비의 즐거움보다는 망가진 물건을 수선하여 오래 쓰는 즐거움을 생활 문화로 확산시키기 위한 워크숍을 꾸준히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요. 사실 물건을 사는 게 더 즐겁지, 고치는 건 즐겁지가 않단 말이에요. 소비가 중독처럼 번져 있는 거죠.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소비하고 가진 물건을 수선하며 환경 이야기까지 자연스레 나눌 수 있는 움직임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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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의 재탄생을 위한 분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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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미림 님이 소속되어 활동하시는 ‘재작소’는 플라스틱을 ‘재사용’하여 ‘재소비’를 창출하는,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만드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에요. 그런데 사실 대부분의 ‘만드는 활동’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쓰레기가 발생하기도 하는 문제를 안고 있어요. 메이커로서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어요.

 

말씀하신 문제에 관해 지속해서 고민하는 편이에요. 사실 사람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쓰레기는 발생하지 않겠죠. 그런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어쨌든 사람이 사는 과정에서 생산적인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는 에너지가 드는 일이고, 또 그것과 관련해 부산물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요. 요새 제로플라스틱 운동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사실 플라스틱을 아예 안 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일회용품 소비 같은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 문화를 바꿔나가는 과정이 중요하고, 그런 문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여러 단위에서 공론화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해요.

 

제가 ‘프레셔스 플라스틱’ 프로젝트를 하고 있지만 이러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도 쓰레기를 전혀 발생시키지 않을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이 두려워 창작 활동을 멈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 생각이 정답은 아니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환경에 더 이로운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더욱 친환경적인 재료를 사용한다거나, 재료를 낭비하지 않고 자투리가 남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아껴서 쓰는 방법, 또 이후의 폐기 문제를 고려하여 창작하는 방식도 있고요. 이런 고민을 촘촘히 연결한다면 메이커 생태계가 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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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셔스 플라스틱 대전’의 메이커 ‘조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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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자원 순환’의 가치로 앞으로 더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또한 지역에서 사회와 환경을 위해 가치 있는 경험을 지속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한 마디도 부탁드릴게요.

 

지속해서 환경 문제에 집중하여 활동할 계획인데요. 초반에 말씀드린 것처럼 ‘의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 순환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에요. 제가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했어요. 사실 그때부터 적게나마 문제의식이 있었거든요. 학생이었을 때 그냥 넘어갔던 문제를 지금 시점에서 해결하고자 해요. 의류가 생활 폐기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에요. 그 문제를 자원 순환 방식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해보고 싶어요. 의류 말고도 다양한 생활 폐기물들을 어떻게 다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감사한 것은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에 동참하고자 하는 분들이 지역에 많다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해요. 함께 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긴 하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은 것에 비해 저희 여력이 부족해 다 수용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 인터뷰를 빌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 계속 관심 두고 함께 해주셨으면 하는 부탁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