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왜 하냐고 묻지 마세요 - 세상을 바꾸고 싶은 떳떳한 청년 라이프👍

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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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비건 베이커리 스토어에서 만난 김동훈님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다.

그의 일상을 촘촘히 둘러싸고 있는 깊은 내면의 가지가 내 앞에서 뻗어 나가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그 조각상을 떠올렸다. 물론 내가 처음 그 조각상을 보았던 때의 기억에서 비롯된 다분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일으킬 작은 영향까지도 내치지 않는, 예민하다기보다 어떤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20대 청년, 비건인, 남성 페미니스트로 수식되는 김동훈님은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며 깨달은 것들을 실천한다. 타의에 의해 통제당하기보다 스스로 원하는 방향에 따라 자신을 통제하며 산다. 여름의 끝자락에 만난 김동훈 씨의 이야기는 명쾌했고, 그것은 그의 내면에서 수없이 다듬어진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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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비건 커뮤니티 활동을 하시고 여러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어요. 요즘 어떤 활동에 주력하고 계시는지요.

 

코로나 시기라 눈에 보이는 활동은 많이 못 하고 있어요. ‘아삭아삭’이라는 오픈 카톡방을 통해 지역 비건들과의 소통을 주로 하고 있고요. 제가 비건을 실천한 지는 1년 조금 넘었어요. 그것보다 조금 늦게 비건 커뮤니티에 합류했고요. 그래서 사실 코로나 이전에도 커뮤니티 기반으로 활동한 내용은 크게 없어요. 기억에 남는 건 플로깅 활동했던 건데, 그 외엔 온라인으로 행사 참여하고 소통했던 게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는 터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주말엔 여기 비건바닐라(대전 서구 갈마동에 위치한 비건 베이커리 스토어)에서 게스트 직원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고요.

개인 SNS를 통해 접하는 사람들, 또 제가 자주 만나는 학생들과 소통하며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학원에서 일하거든요. 국어를 가르치는데 국어 수업에 지장 주지 않는 선에서 현 사회문제에 공감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사실 10대들이 제도권 내의 학습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있진 못하거든요. 그저 시험 성적으로 내가 어느 대학을 갈 수 있냐 없냐, 그런 다음엔 또 취업하냐 못 하냐, 취업해서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냐 없냐, 이런 식의 공통된 성공 기준에 매여 있는 거죠. 그게 전부인 것처럼 이미 트레이닝 되고 있는 것, 그것 하나밖에 없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특히 저는 요즘 가장 큰 문제가 ‘혐오’라고 생각하거든요. 혐오가 어떤 인식에서 오는 것이긴 하지만 결국 표현의 문제가 있는 거니까. 그 표현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그런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학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수업을 통해 이런 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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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비건 커뮤니티와 함께한 플로깅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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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비건뿐만 아니라 10대와의 소통을 통해 일상에서 실천할 만큼 사회문제에 눈뜨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지네요.

 

제가 생각하기에 상식적인 것을 계속 따라간 것이 계기였던 것 같아요. 어떤 게 올바른 것인지, 개인이나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평소에 고민하고 집중하는 편이에요. 스스로 돌아보는 습관 형성이 되어있는 거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닌지, 내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 건지 꾸준히 돌아보는 습관이 시작이었던 거예요.

제가 남성으로 태어나 사는 것 자체도 큰 계기인 것 같아요. 보통 자신의 현실이 불합리하고 억울하다 여겨지면 으레 곁에 있는 남을 탓하잖아요. 상대를 혐오하게 되는 거죠. 현재 페미니즘에서의 백래쉬(사회적‧정치적 변화에 따라 대중에게서 나타나는 반발을 뜻하는 말이다. 흑인 인권 운동, 페미니즘, 동성혼 법제화, 세금 정책, 총기 규제 등 사회‧정치적 움직임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단순한 의견 개진에서부터 시위나 폭력과 같은 행동으로까지 자신의 반발심을 표현하는 것이다.) 문제도 거기서 온다고 봐요. 저도 남성이니까 남성의 위치에서 편향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남성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억울함은 저도 갖고 있어요. 어르신들이 어린 남자애의 성기를 만진다든가, 남성이라고 해서 좀 더 강한 책임감을 강요한다든가. 또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식의 감정 통제도 있죠.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 억울함 때문에 여성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억울함을 일깨워준 사회 현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가 좀 예를 들고 싶은 제품이 하나 있어요. 풀무원에서 나온 ‘아빠가 만들어도 맛있는 우동’인데 저는 그런 제품을 보면 남성으로서 화가 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빠를 요리 못하는 사람으로 위치시킨 거잖아요. 그렇게 사회가 만들어놓은 장치에서 비롯된 현상을 향해 화를 내야 한다는 거예요. 불합리한 사회 문제는 결국 사회적 약자와 연결되어 있어요. 여성과 남성의 문제뿐 아니라 노키즈존으로 배제당하는 어린아이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또 더 나아가 인종의 문제, 동물권 문제, 지금은 그 모두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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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평소 즐겨 먹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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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평소 일상을 좀 더 듣고 싶어요. 더 나은 사회와 자신을 위해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요소들에 관해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비건에 관해 남성이 갖는 편견 중 하나가 채식을 하면 여성호르몬이 많아진다는 거예요. 또 식물성단백질은 좋지 않으니 동물성단백질을 먹어야 근육이 자랄 수 있고 건강해질 수 있다는 편견도 있죠. 저는 그 편견을 깨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시도해보는 중이에요. 비건식과 운동을 병행하여 바디프로필을 찍어보려 준비하고 있어요. 제 건강한 몸을 시각화하여 그것이 비건을 통해 이뤄질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보고 싶은 거죠.

저는 제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이 사회에서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을 충분히 한 다음에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에요. 개인의 감정이 어떤 행위의 이유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물건도 감정으로 소비되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살면 개인적으로는 만족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고려하지 않은 거잖아요. 제가 비건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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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평소 즐겨 먹는 자연식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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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실천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여겨져요. 그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또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만의 동력이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제가 불편한 만큼 비건이 남들에게도 불편할 수 있잖아요. 비건을 시작하고 난 후 주변 친구들이 어디 놀러 가자고 하면 거절하는 편이에요. 여럿이서 놀러 갔을 경우, 나를 위한 음식을 챙겨주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면 더 고민하지 않고 안 되겠다고 말하는 거죠. 사실 저는 “나는 비건이야.”라고 말했을 때 되돌아오는 시답지 않은 반응들이 힘들어요. 예를 들면 이런 반응이요. “왜 하는 거야?” “그런 거 왜 해?” “힘들지 않아?” 단순히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묻는 것이기 때문에 듣기 싫더라고요. 서로의 삶에 대한 공감이 있기 전까지는 관계를 쉽게 만들지 않게 된 것이 지금의 어려움인 것 같아요. 그럴 때 이겨내는 저만의 방법은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지극히 당연한 행위를 하고 있으며 이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상식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어려움은 내 탓이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거죠.

최근엔 비건 커뮤니티 톡방에서 다른 비건들과 이야기하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이 생겨났어요. 같이 하고 있구나. 나뿐만이 아니구나. 이런 마음이요. 또 책을 읽거나 기타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게 제 취미이자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힘들 때마다 유지하는 루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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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읽고 있는 비건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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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지금의 삶을 유지하게 된 이후 긍정적으로 나타난 변화는 무엇일지 듣고 싶어요.

 

지나고 돌이켜보니 제가 좀 떳떳해진 것 같아요.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말하지 못하고 묻어 두었던, 그런 것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서 얻게 된 변화인 거예요. 예를 들어 ‘돼지와 개는 어떻게 생명이 다르기에 인간에게 다른 취급을 받는 거지?’ 이런 의문을 가졌을 때 스스로에게도 대답할 수 없었던 것을 지금은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된 거죠.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비건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해서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그냥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비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요건을 스스로 충족시켰다는 게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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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비건바닐라 게스트 직원으로 일하며 개발한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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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6.

비건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분들과 생활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서로 도움도 되는 관계일 것 같아요. 비슷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인터뷰를 통해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비건 문제만이 아닌 개인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갈 것 같아서요.

 

비건 실천하면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다른 사람하고 부딪히기 시작하는 게 제일 큰 스트레스에요. 그렇기 때문에 비건과의 만남은 그저 만남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편이에요. 만났을 때 주로 나누는 이야기는 이 사회가 비건에게 가하는 폭력이에요. 저희 오픈 카톡방에서 자주 있는 일인데, 들어와서 고기 사진을 잔뜩 올리고 잘못된 표현을 남기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많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러지? 이런 식의 이야기를 서로 나눠요. 또 비건 관련 정보 공유도 많이 해요. 어떤 제품이 새로 나왔는데 괜찮더라, 어떤 식당에 가니까 이 메뉴는 먹을 수 있겠더라. 뭐 이렇게요. 환경문제, 동물권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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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환경을 위해 사용하는 제로웨이스트 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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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자 마음먹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인터뷰를 빌어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한편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인데, 남은 여름을 어떻게 건강하게 보낼 계획인지도 궁금하고요.

 

집에 에어컨이 없어요. 지금 사는 집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에어컨이 없었어요. 여름에 한창 더울 때 살까 말까 하다가 그냥 지나갔어요. 에어컨 구입하고 설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또 절차도 복잡하니까요. 원래 있었다면 당연히 그냥 썼겠죠. 그런데 마침 없으니까 이게 가만히 있어도 환경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이 된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참았어요. 진짜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여름 막바지네요. 에어컨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느낀 게 있어요. 이제 인간이라는 종이 야생 기후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한계에 왔다는 것을 느낀 거예요. 인간 이외 다른 동식물은 그냥 그 기후에서 살잖아요. 인간은 냉난방 없이는 못사는 생명체가 되었고요. 고민 끝에 에어컨을 들이지 않기로 했어요. 힘들지만 남은 여름도 에어컨 없이 살아보려고 해요.

그리고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긴 해요. 기존에 제가 활용하던 SNS 이외에 다양한 영역에서 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인터뷰하게 되었는데요. 앞으로도 다채로운 방법을 통해 제 삶을 드러내고 공유할 기회가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